[2026.08] 월간 <유레카> 8.15 광복 특집 - 513호 (2026년 8월호)

특집이미지.jpg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해방을 실감한 첫날


이튿날, 아침부터 사람들이 서대문형무소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이제 막 꾸려진 건준을 통해, 정치범과 경제범들을 석방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었다. 한국인 간수나 형무소 직원들의 입을 통해 곧 형무소 문이 열릴 분위기라는 것을 전해 들은 사람들도 있었다. 또 천황의 방송이 일본의 항복과 조선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이들이 “그렇다면 형무소에 갇힌 독립운동가들도 풀려나겠구나” 싶어서 온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가족과 동료는 물론이고, 해방을 눈으로 확인하려는 시민 수만 명이 구름처럼 몰렸다. 인왕산 기슭은 물론 전차 지붕 위까지 사람들이 올라타 형무소 앞길을 가득 메웠다는 기록도 있다.오전 10시를 넘겨 마침내 굳게 닫혔던 무거운 철문이 삐걱거리며 열렸다. 쇠사슬을 풀고 수의를 벗고 걸어 나오는 이들의 모습이 하나둘 보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선독립만세!” 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오랜 수감 생활과 혹독한 고문 탓에 뼈만 남은 몰골, 텁수룩하게 자란 수염, 철지난 누더기나 낡은 한복을 입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 어떤 이들은 혼자 걷지 못해 동료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왔다. 만세 소리와 통곡 소리가 바다를 이뤘다. 시민들은 풀려난 이들을 번쩍 들어 가마를 태웠고, 누군가 건넨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은 행진을 시작했다. 형무소를 나와 서대문 로터리를 지날 때에는 2만이었던 군중이, 광화문통에 이르렀을 때에는 소식을 듣고 뛰어나온 시민들이 대거 합류해 두 배가 넘게 불었다. 전차가 멈춰서 종을 울리고, 상인들은 떡과 주먹밥, 물을 건네며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종로통에 들어서니 파고다 공원과 YMCA 건물 주변에 대기하던 청년·학생들이 태극기를 들고 합류하면서 종로 거리는 그야말로 발 디딜 틈 없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당시 현장을 목격한 문학 평론가 임화는 이 광경을 떠올리며 “우리는 어제까지 우리의 거리에서 한 사람의 동지도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거리에는 수만의 동지가 넘쳐 흐르고 있다. 이 거대한 민중의 바다야말로 우리 문학이 발을 딛고 서야 할 유일한 대지”라고 감격했다. 또 이날 형무소에서 풀려난 이들의 기억과 감회를 적은 글이 있어 옮겨보면 이렇다.


“8월 15일 밤부터 감방 밖이 유난히 시끄러웠다. 간수들의 발자국 소리가 다급했고, 평소와 달리 기가 죽은 기색이 역력했다. 16일 아침, 마침내 문이 열리며 간수가 “나가시오”라고 했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셔 눈을 뜰 수 없었다. 형무소 마당에 나서자마자 수많은 동지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었다. 문밖으로 걸어 나가자 성난 파도 같은 군중들이 우리를 에워싸고 만세를 불렀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할 수 없어 내 뺨을 몇 번이나 때려보았다” _소설가 이기영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를 짐승 취급하며 윽박지르던 일본인 간수들이 아침이 되자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극존칭을 썼다. “그동안 대단히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며 공손하게 감방문을 열어주는데, 그 비굴한 모습을 보는 순간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동시에 말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솟구쳤다. 철문을 나서며 비로소 ‘나라를 찾았구나’ 하는 실감이 온몸을 전율케 했다” _독립운동가 이관술


“형무소 문을 나서는데 누군가 내 손에 태극기를 쥐여주었다. 태극기를 실제로 본 것은 평생 처음이었다.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부르는데 눈물이 멈추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 서 있던 이름 모를 어머니들이 우리에게 쥔 주먹밥을 입에 넣어주며 울었다. 그 주먹밥의 맛과 서대문 앞의 그 뜨겁던 공기는 평생 잊을 수 없다” _익명의 수감자 구술


행진 대열은 안국동을 거쳐 지금 현대 사옥이 자리한 휘문중학교 운동장으로 향했다. 건준 사무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기도 했고, 여운형의 자택과 담벼락을 나란히 하는 곳이었다. 오늘의 가장 빛나는 순간 여운형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오래도록 남을 명연설을 남긴다.


“조선 민족은 마침내 해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일시적인 감정에 눈이 멀어 피를 흘리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피를 흘려야 할 곳은 보복의 거리가 아니라, 새 나라를 건설할 기초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전 민족이 일치단결하여 우리의 건국 역량을 세계에 증명해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무질서와 폭동으로 날을 지샌다면, 외세는 우리에게 자치 능력이 없다고 조롱하며 또다시 지배하려 들 것입니다.동지 여러분, 우리는 파괴자가 아니라 건설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녀노소, 좌와 우를 막론하고 모두 손을 잡고 위대한 자주독립 국가를 우리 손으로 세웁시다!”새 조국 건설에 대한 의지, 외세에 의존하지 않는 자주 국가 수립의 열망, 좌우합작을 통한 대동단결의 호소. 뜻하지 않게 해방을 맞은 국민들에게 전하는 노정객의 절절한 당부는 모두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본 대오는 흩어졌지만 만세 소리는 경성 곳곳에서 밤늦도록 이어졌다.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로 가득 찬 기차간에서도 만세는 끊이지 않았다. 35년 동안 억눌리고 숨죽여왔던 설움이 폭죽마냥 터지며 그렇게 기찻길을 따라 전국으로 번져갔다. 해방을 실감하는 첫날이었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513호(2026.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목록으로
채널 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