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 월간 <유레카> 나무의 세계 특집 - 515호 (2026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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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무인가?

‘나무를 보면 내가 보인다’


나무와 함께 자란 아이들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 있네. 솔바람이 몰고 와서 살짝 걸쳐놓고 갔어요.”

나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여서, 무심코 흥얼거리다가 피식 웃었다. 친한 친구들끼리는 저 가사 속의 ‘조각구름’을 ‘아무개 빤쓰(팬티)’라고 바꿔 부르며 놀리던 생각이 나서다. 시인 박목월 선생의 <흰 구름>이라는 동시에 곡을 붙인 유명한 동요인데, 온 나라 아이들이 조각구름을 아무개 팬티로 바꿨으니 참 개구지기도 했다. 내가 이 노래를 부를 때에는 ‘미루나무’가 아니고 ‘미류나무’였다. 그렇게 쓰고 읽었다. ‘미국(美, 나라 이름 미)에서 온 버드나무(柳, 버들 류)’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1988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바뀌면서 본래의 이름을 잃고 미루나무가 되었다. 미루나무와 비슷한 포플러 나무를 노래한 것도 생각난다. “포플러 이파리는 작은 손바닥(손바닥), 잘랑잘랑 소리난다 나뭇가지에(가지에)”이 노랫말도 아동문학가인 이원수 선생이 썼다. 제목은 <나뭇잎>. 음악시간에 분단을 나눠가며 돌림노래로 불렀는데, 음치에 박치가 마구잡이로 섞였으니 제대로 될 리가 없다. 그럴 때마다 풍금을 치던 선생님이 건반을 쾅쾅 내리치며 “아니 아니, 그게 아니지!”라며 눈을 흘기던 생각도 난다. 미루나무도 포플러나무도(여기에 플러타너스까지 포함해서) 예전엔 빨리 자라는 수종이라고 해서 가로수로 많이 쓰여 사방에 흔했는데, 언젠부턴지 보기 드문 나무가 된 건 참 아쉽다. 추억을 빼앗긴 듯해서다.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야, 다리 아프지. 나무야 나무야 누워서 자거라” 아이의 따스한 눈길로 서서 자는 나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이야기를 강소천 선생은 <나무야>라는 동시로 남겼다. 이것 역시 동요로 만들어져 지금껏 불린다.


박홍근 선생이 쓴 <나뭇잎 배>는 또 어떤가.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거리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두고 온 나뭇잎 배를 궁금해하는 이 맑고 순수함.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 맑고 순수함은 어디로 갔을까, 어디에 가면 그 고운 마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들 모두 어릴 적 입에 달고 다니던 노래들이다. 그리고 시다. 나무는 늘 그렇게 문학과 음악으로 우리 생활 속에 있었다. 국어 교과서에서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끝내 새싹을 내미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담은 박두진의 시 “가지마다 파아란 하늘을 받들었다. 파릇한 새순이 꽃보다 고웁다”는 <낙엽송>을 배우고, “나무는 덕을 지녔다. 나무는 고독하다”로 시작하는 이양하 선생의 수필 <나무>를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낙엽을 두고 “폴란드 망명 정부의 지폐”라고 허무하고 씁쓸하게 표현한 것이 아주 인상 깊었던 김광균의 시 <추일서정(秋日抒情)>은 단골 시험문제기도 했다. 더 커서는 하덕규의 노래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 (중략) 내 속엔 내가 이길 수 없는 슬픔 무성한 가시나무숲 같네”를 청승맞게 읊조리며, 존재의 의미를 찾으려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이렇게 우리는 나무와 함께, 나무의 속도로 자랐다. 어쩌면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나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은 자기 안의 나무를 살뜰히 키워낼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남보다 더 빨리 가지를 뻗어야 하고, 더 화려한 꽃을 피워내야 한다는 조급함 속에서 정작 뿌리의 깊이나 존재는 잊고 살기 일쑤다.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나무는 단순히 숲을 이루는 일개 식물군이 아니다. 나무는 수억 년 동안 지구라는 무대 위에서 단 한 번도 자기 자리를 탓하지 않고, 비바람과 눈보라를 견디며 스스로를 유지해 온 위대한 생명의 스승이다.


나무에게서 배우는 몇 가지 지혜

이제 우리는 나무가 품은 드러내지 않은 수줍은 비밀들을 하나씩 들춰볼 것이다. 아무런 기계장치 없이도 수십 미터 높이로 물을 퍼 올려 생명을 순환시키는 정교한 혈관의 세계를 들여다보며 경이로움을 보고, 밤과 낮 그리고 사계절의 순환을 훑어보며 때가 되면 싹을 틔우고 또 미련 없이 잎을 털어낼 줄 아는 강인함과 절제의 지혜도 보게 될 것이다. 홀로 서 있는 것처럼 보여도 땅속에서는 뿌리와 곰팡이의 네트워크를 통해 서로 양분을 나누고 경고를 주고받는 따뜻한 연대의 현장도 확인할 것이고, 상처의 시간을 굵고 깊은 나이테로 단단히 기록하는 성숙한 나무의 모습도 만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인간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불을 피우던 불쏘시개 역할부터 문화를 기록해 온 종이, 그리고 앞으로 활용하게 될 첨단 소재에 이르기까지, 인류 문명을 말없이 받쳐준 나무의 고마운 쓰임새를 살펴보려 한다. 그리고 아기 바구니라는 생명의 탄생에서 시작해 삶의 마지막 안식처인 수목장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품어온 나무의 거대한 품을 함께 짚어보려 한다. 나무를 아는 것은 단순히 자연을 공부하는 일이 아니다. 나무가 제 몸을 단단히 하며 버텨낸 시간을 이해할 때, 비로소 내 안에서 일어나는 방황과 성장의 통증을 긍정하게 된다. 나무가 숲을 이루며 서로 대화하는 법을 알 때,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이제 나무의 안과 밖, 그리고 나무와 함께 걸어온 인간의 시간을 따라가 보자. 이 글이 끝날 때쯤, 여러분 마음속에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깊고 튼튼한 뿌리 하나가 뻗어내리기를 바라면서.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513호(2026.08)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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