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1] 월간 <유레카> 지방소멸 특집 - 516호 (2026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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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의 꿈과 역사, 권리는 찾았으나 곳간을 채우지는 못했다


40년 만에 지킨 약속, 되찾은 지방자치


수도권 집중 현상과 그로 인한 지역 불균형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대두된 게 아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우리나라가 빠르고 격렬

하게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사람과 자원이 대도시로 모여들던 ‘이촌향도(離村向都)’ 바람이 그 뿌리요 시작이다. 중앙정부는 국가 성장의 동력이라고 여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나라를 운영했다. 이로 인해 지방은 점차 활력을 잃고 수도권과의 격차는 모든 면에서 날로 벌어졌다.

 이 일방적인 쏠림과 불균형을 막기 위해 등장한 것이 ‘지방자치’다. 우리 지역의 문제를 중앙정부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주민들이 직접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하고 지역에 맞는 산업을 개발하고 육성해 수도권과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절박한 반성에서다.


이촌향도: 산업화로 인해 농민들이 다른 분야의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현상


지방자치를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학급의 모든 규칙부터 청소 당번까지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거나 지정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

이 스스로 학급 회의를 통해 규칙과 당번을 정하는 ‘자치회’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사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생각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 만들어지던 1948년 제헌 헌법에도 이미 “지방자치를 실시한다”고 똑똑히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동안 총독부로부터 일방적인 통치를 받았던 경험이 ‘자치’의 필요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실시되지 못하다가, 1952년 ‘지방자치법’이 제정되면서 전쟁통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처음으로 지방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이른 시기였다. 

하지만 이 소중한 권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방의회는 중앙 권력의 편에서 보자면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는데 걸림돌이 되는 껄끄럽고 불편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부는 지방의회를 강제로 해산해 버렸는가 하면, 1972년에 개정된 유신헌법(제7차 개정 헌법)의 부칙에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명문화했다.

 ‘통일’이라는 거대한 국가적 과제를 명분 삼아, ‘지방자치’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헌법 부칙 한 줄로 완전히 묵살한 대표적인 독소 조항이 아닐 수 없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렇게 우리는 중앙정부가 전국의 모든 시·군·구 행정을 일방적으로 지시하고 결정하는 독재와 중앙집권의 시대를 지나야 했다. 멈춰버린 지방자치가 부활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1990년 10월, 당시 야당 지도자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단식 투쟁이 있었다. “국민에게 약속했던 지방자치제를 당장 실시하라”는 구호를 내건 13일간의 절박한 투쟁. 이 요구가 받아들여져 마침내 1991년, 무려 30여 년 만에 우리 손으로 동네 의원을 뽑는 지방의회 선거가 실시되었고, 1995년에는 시장과 구청장, 도지사까지 주민의 손으로 직접 뽑는 완전한 지방자치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왜 중앙이 아니라 ‘지방’이어야 할까


간혹 사람들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어차피 같은 나라요 국민인데 똑똑한 장관이나 중앙정부 공무원들이 전국을 다 알아서 관리해 주면 더 편한 것 아닌가?” 

하지만 그건 전교생에게 똑같은 크기의 교복을 지급하고서 “군말 말고 그냥 맞춰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키 큰 학생도 있고, 체구가 작은 학생도 있고, 활동적인 옷을 좋아하는 학생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228개나 되는 시·군·구가 있다. 바다를 품은 어촌 마을도 있고,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산촌도 있고, 너른 논밭을 경작하며 사는 농촌도 있다. 물론 각종 첨단 산업이 발달한 대도시도 있다. 그런데 서울에 살면서 정부청사에 앉아 정책을 만드는 장관이나 공무원이 저 멀리 강원도 산골 마을의 버스 노선이 어떤지, 남해안 바닷가 마을의 어부들이 계절마다 무엇 때문에 애를 먹는지 세세하게 다 알 수 있을까?

동네의 쓰레기는 언제 수거하는 게 좋은지, 동네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은 어디에 지을지, 마을을 지나는 버스 노선은 어떻게 결정해야 효율적인지 같은 일상의 문제는 그 동네에 사는 주민과 지자체가 가장 잘 알고, 또 스스로 결정하는 게 옳다. 이런 것을 일컬어 ‘생활 민주주의’라고 한다. 

학생들이 저마다의 키와 체형과 취향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하듯이, 처한 상황이 서로 다른 동네의 문제는 서로 다른 해법으로 주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모든 지역이 저마다의 독특한 특성을 갖추고, 그것을 바탕으로 건강한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지방자치의 시작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인문교양 월간 <유레카> 516호(2026.11)에 실린 글입니다. 무단 전재 및 복사는 불법이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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